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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역사 그리고 시작 소개

축구전술이야기

by eksdidtkfka 2023. 3. 2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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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드컵이란?

FIFA 월드컵(영어: FIFA World Cup)은 축구 국제 기구인 국제 축구 연맹(FIFA)에 가맹한 축구 협회(연맹)의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만 참가하는 국제 축구 대회이다. 일반적으로 월드컵 축구나 월드컵이라고도 한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1930년에 첫 대회가 열렸다. 1942년과 1946년 대회는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열리지 못했다. 대회는 예선 무대와 본선 무대 등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예선 무대는 본선에 진출할 32팀을 가려내기 위해 본선 보다 3년 일찍 시작한다. 현재 본선은 개최국 경기장에서 한 달 남짓 32개 팀이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월드컵 결승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시청하는 단일 스포츠 경기이다. 어림잡아 71,510만 명이 2006FIFA 월드컵 결승전을 시청했다고 한다.

 

20번 대회가 열리는 동안 8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가장 우승 횟수가 많은 팀은 브라질로 총 다섯 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 다음으로 이탈리아와 독일이 네 번, 아르헨티나가 세 번 그리고 초대 우승팀인 우루과이와 프랑스가 각각 두 차례씩, 잉글랜드와 스페인이 각각 한 차례씩 우승을 차지했다. 네덜란드는 준우승만 3(1974·1978·2010)했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22FIFA 월드컵은 카타르에서 열렸고,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2026년은 캐나다/멕시코/미국에서 개최된다.

 

세계적인 종합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올림픽과 달리 월드컵은 단일 종목 대회다

 

2. 역사

이전의 국제 대회들

세계 최초의 A매치는 1872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스코틀랜드 대 잉글랜드의 경기였으며, 1884년에 시작된 첫 국제 대회인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영국 정기전)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이 대회는 1984년까지 이어졌다.)[3] 이때 축구는 영국과 아일랜드 외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세기가 지나 다른 지역에서도 축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1900, 1904, 1906년 하계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이 대회에서 별도의 메달은 수여되지 않았다.

 

월드컵의 역사는 FIFA1904년에 설립된 이후로 FIFA가 주관하며 올림픽과는 별개로 국가대항 축구 대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1906년에 스위스에서 있었다. 하지만 FIFA의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이 대회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5]

 

올림픽 대회가 아마추어 팀들 간에 계속 경쟁을 하는 방향으로 가는 가운데 1909, 토머스 립튼은 토머스 립튼 트로피 선수권 대회를 토리노에서 개최한다. 립튼 선수권은 각기 한 국가를 대표하러 나온 개인 클럽간(국가 대표팀간이 아닌)의 대회였다. 대회는 때때로 첫 번째 월드컵이라고 묘사되곤 했으며, 이탈리아, 독일, 그리고 스위스의 일류 프로 클럽팀이 주로 참가했다. 그러나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이 대회에 관여하려 않았으며, 프로팀들을 보내달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립튼은 카운티 더럼에 있는 아마추어 팀인 웨스트 오클랜드를 잉글랜드 팀을 대표하여 대신 초대했다. 웨스트 오클랜드는 대회에서 우승했고, 1911년의 대회에서도 성공적으로 타이틀을 방어, 대회 규칙에 따라 트로피를 영원히 보유하게 되었다.

 

1914년에, FIFA는 올림픽에서의 축구 대회를 세계 아마추어 축구 선수권대회로서 승인해주었고, 대회의 관리를 맡게 되었다. 그 결과 1920년 하계 올림픽에서 세계 최초의 대륙 간 축구 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는 이집트와 13개의 유럽 팀들이 참가하였다. 금메달은 벨기에가 차지하였다.

 

1928년에 FIFA는 올림픽과는 별개로 직접 주관하는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다. FIFA는 첫 번째 FIFA 월드컵 개최국을 1924년 하계 올림픽과 1928년 하계 올림픽의 축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1930년에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우루과이로 결정한다.

 

첫 번째 월드컵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있는 센테나리오 경기장. 첫 번째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장소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1932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개최국인 미국에서 미식축구의 인기 탓에 축구의 인기가 낮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계획이 없었다. 또한, FIFAIOC의 아마추어 선수의 지위에 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축구는 올림픽에서 제외되었다. 이어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쥘 리메는 첫 번째 월드컵 대회를 1930년 우루과이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각 국가의 축구 협회들은 대회 참가 초청을 받았지만, 유럽 지역의 팀들에는 우루과이가 대서양을 횡단해야 하는 먼 나라였기 때문에, 큰 지출과 오랜 여정이 불가피했다. 그런 이유에 따라 대회 2달 전까지도 팀을 보내겠다는 확약을 한 유럽 국가는 없었다. 결국, 쥘 리메는 유럽 팀들을 한 팀이라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우루과이는 모든 체류비와 차비를 출전팀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조건을 내건 끝에 여비 및 체류비용이 공짜라는 점과 쥘 리메의 눈치를 봐서 벨기에, 프랑스,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가 대회 참가에 응했다. 이리하여 유럽에서 4, 북중미에서 2, 남미에서 7, 13개 팀이 대회에 참가하였다.

 

월드컵 개막식은 두 경기가 동시에 열렸으며, 프랑스와 미국이 각각 멕시코를 4-1, 벨기에를 3-0으로 꺾고 승리했다. 월드컵 사상 첫 번째 득점은 프랑스의 루시앙 로랑이 기록했다. 우루과이는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93,000명의 관중 앞에서 아르헨티나를 4-2로 꺾으며 첫 번째 FIFA 월드컵 우승 팀이 되었다.

 

시련 이후 계속되는 성장

 

각국의 월드컵 최고 성적

1950FIFA 월드컵은 처음으로 영국의 팀들이 참가한 대회였다. 영국의 일부 팀들은 그들과 전쟁했던 나라들과의 대결하기를 꺼렸고 또 그들의 팀들이 다른 나라의 축구에 영향을 주는 것을 항의하고자 1920년에 FIFA에서 탈퇴했으나,[14] 그러나 FIFA의 초청에 따라 1946년에 다시 가입했다.[15] 추가로 1950년 월드컵은 한국 전쟁이 발발한 시각과 동일한 시각에 개막되었다. 그리고 1950년 대회에서는 또한, 1회 대회의 우승국이었던 우루과이가 이전 두 대회의 참가 거부 끝에 복귀했다. 우루과이는 이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우승했고 이 대회는 마라카낭의 비극이라고 하는 역사상 유명한 경기로 후에 남게 되었다. 우루과이에 패배한 브라질은 그 굴욕을 참지 못해 유니폼의 색깔이 변경되었다.

 

1934년부터 1978년 대회까지는 1938년 대회에서 오스트리아가 나치 독일에 예선 통과 후에 흡수됨에 따라 15개 팀의 참가로 치러진 경우와, 1950년 대회에서 인도,[16] 스코틀랜드, 터키가 기권해서 13개 팀의 참가로 치러진 경우를 제외하면 총 16개의 팀이 본선에서 경쟁을 치렀다.[17] 가장 많은 참가를 한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과 남미에서 온 국가들이었으며 일부 소수의 북중미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의 팀들이 참가했다. 이들 팀은 대부분 쉽게 유럽 팀들과 남미 팀들에 패했다. 1982년까지 유럽과 남미를 제외하고 1라운드를 벗어난 팀들은 1930년 대회에서 준결승에 들었던 미국, 1938년 대회에서 8강에 들었던 쿠바, 1966년 대회에서 8강에 들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70년 대회에서 8강에 들었던 멕시코가 전부였다.

 

본선 무대는 1982년에 이르러 24개 팀으로 늘어났고 이때 조별리그를 적용함에 있어 조3위팀끼리의 승점 차이로 4팀을 진출시키는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1998년에는 32개 팀으로 늘어나며 이때부터 조 3위는 무조건 탈락했는데, 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북중미 팀들의 더 많은 참가를 가능하게 했다. 단 하나의 예외는 오세아니아 지역으로 이들은 최근 예선 기준으로 0.5장의 티켓만을 배분받아 본선 진출을 완전히 보장받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들 지역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팀들이 늘어나고 있다. 멕시코는 1986FIFA 월드컵에서 8강에 들었으며 카메룬은 1990FIFA 월드컵에서 8강에, 불가리아는 1994FIFA 월드컵에서 준결승에, 대한민국은 2002FIFA 월드컵에 준결승이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2002년 대회에서는 그 외에 세네갈과 미국이 8강에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유럽과 남미 팀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 예로 2006FIFA 월드컵에서는 8강에 든 팀이 오직 그들이었음이 이를 반증한다. 이와 같은 특정 지역의 편중 현상은 때로는 월드컵을 재미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유럽, 남미의 지역 대회와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되며, 그 밖의 대륙들에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2006년 대회의 예선에는 198개 팀이 참가했으며 2010FIFA 월드컵에는 204개 팀이 본선 진출을 위해서 예선에 참가했고. 2014년 브라질에서 개최된 2014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 역사상 가장 많이 참여한 207개 국가가 예선에 참여했다.

 

 

 

3. 총평

 

이제는 세계의 축제로 발돋음한 "월드컵"  대한민국도 2002년의 과거의 영광에 머무는 것이 아닌

세계의 축제에 주체로서 활동하고, 당당하게 성적을 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축구 같이 보는 남자 축보남 이였습니다.

 

[참고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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